영화와 정신분석학은 모두 근대성(modernity)이라는 역사적 맥락 안에서 형성된 공통의 사회적·문화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가 정신분석과 심리학을 받아들여 영화이론을 정립한 것은 대략 1960년대이고, 반대로 심리학이 영화를 받아들여 영화치료를 시작한 것은 1990년대경의 일이다. 즉, 1895년에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의 영화 <공장 문을 나서는 노동자들>을 대중 앞에서 영사했고,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출간한 이래, 같은 해에 태동한 두 분과는 근 60년 이상이 지나서야 서로를 알아보았고, 예술치료 분야에서 영화치료라는 꽃을 피우기까지 1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이 책 『열정의 시선: 인지주의로 설명하는 영화 그리고 정서』는 이러한 영화와 심리학, 두 분과의 100년 동안의 숙명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노엘 캐럴을 비롯해 에드 탠, 칼 플랜팅거, 니코 프리다 등 전 세계의 가장 저명한 영화 이론가들은 심리학과 신경학의 최첨단 연구 분야인 인지주의를 차용하여, 영화관람 안에서 관객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 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극장은 더 이상 매혹적인 훔쳐보기나 스크린과의 봉합이 난무하는 욕망과 쾌락의 신전이 아니다. 그보다는 인지와 정서라는 좀 더 점잖고 논리적인 정신활동이 개입되고 열정에 사로잡힌 시선이 교환되는 ‘생각의 야구장’ 같은 곳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연합이론, 공감, 충성 등등 생소한 인지주의 개념이 많겠지만, 똑같은 영화 관람이라는 현상을 정신분석 이론과 이리도 달리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또 다른 정신적 신대륙에 가 닿는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